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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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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0일(일) :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결국 에드워드 호퍼를 보러왔다. 호불호가 없을 작가지만, 전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듯하다. ‘익히 알고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라는 건데, 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의 드로잉, 판화 작품이 이렇게 대단하고, 멋질 줄이야. 한 작가의 대표작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높은 고지에 오르기 위해 오르는 한 발자국처럼 덜 주목을 받는 치열한 작품을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거다. 그런데 길 위에서라는 제목을 지으려면 케루악도 언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가며 브람스만 들었던 하루 윗 동네에 베토벤이라는 커피숍. 그런데 아이유 노래를 틀어준다. 최대 단점. 외국 버스 느낌이라 찍었는데, 영상 회사인 듯하다. 종잡을 수 없는 건축양식이 눈을 사로 잡았고 카페 이름도 지나칠 수 없네 ..
8월 11일(금) : PERIGEE UNFOLD 2023 <세 개의 전날 저녁> 고요손 작가를 보기 위해 페리지 갤러리에 왔다.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마침 단체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오늘 퍼포먼스는 고요손, 김상소, 정주원 작가의 작품들이 놓인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며 벌이는 이야기인데, 몰입도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의 조화가 돋보였다. 흥미로운 메타픽션.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는 고요손 작가. 앞으로도 더욱 재밌는 작품들을 보여줄 듯하다. 전시를 보고 드럼 연습실에 왔다. 170이라는 속도는 아직 나에게 무리.
뤽 다르덴, 《인간의 일에 대하여》, 2022년, 미행 당직 근무를 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다. 다르덴은 사람에 대해 따뜻한, 세상에 대해서는 곧은 시선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담은 게 영화지만, 영화가 세상이 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모든 생각은 이미 죽음에 대한 부정 아닌가?" p.23 "상상은 죽는다는 두려움의 결과다." p.43 "이따금 나는 죽은 자들이 우리와 비교해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살아가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 시간 너머로 도피했으니 말이다." p.47 "삶이 살 가치가 있으려면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며, 삶은 삶을 진심으로 원할 때만 살 가치가 있다. 자살이 이를 입증해 준다." p.72 "어린 시절을 일헝버린 우리로서는 더더욱 아이의 어린 시절을 부러워하며, 우리의 외부에 어린 시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2022년 10월 14일(금) : 2022년 부산비엔날레 마치 뮤지엄 전시처럼 깔끔한 느낌. 항상 비엔날레가 날이 서있고, 반향을 일으켜야만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걸 기대할 수밖에 없는 습관적인 습관
김혜영, 권하원, 배예람, 경민선, 이로아, 《호러》, 안전가옥, 2021년 전공서적을 빌리러 천년 만에 개포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이다. 신간 코너에 ‘호러’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자마자 집어 들었다. 시험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두 호흡에 완독했다. 사실, 공포라는 게 꼭 자르고, 썰고, 찔러야 생기는 감각은 아니다. 의붓자식을 살해하는 비정한 부모의 뉴스뿐만 아니라 내 통장에 마이너스가 불어나고, 회사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는 등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마주하는 것 또한 큰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굳이 공포 영화/소설을 보는 건 현실의 공포에 좀 더 단련이 되게 하는 뭐,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젊은 작가들이 쓴 단편 모음이다. 이들이 느끼는 공포의 양상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과 사적 복수가 고전적..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2013년 총 640페이지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나쓰메 소세키라 완독했을 뿐이다. 읽는 내내 지루했지만, 내 결벽증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올 수 있었다. 작가의 가부장적 태도, 자의식 과잉(물론 일부러 희화화했을 수도)이 보는 동안 거슬렸고,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도 이 책엔 없었다. 묵혔던 숙제를 해치워 후련할 뿐이다. "세상 이치를 안다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는 죗값이다." p.251 "옛날 어느 스님이 누가 자신을 베려고 하자 '칼을 번뜩이며 나를 벤들 봄바람을 벤 것이나 마찬가지, 깨달음을 얻은 중의 생명을 끊을 수는 없다'" p. 417 "만약 인간이 자기 바깥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면, 뛰쳐나가자마자 자기는 없어지고 만다." p. 429
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 2012년, 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표지 이미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성의 얼굴 위로 붓 자국으로 지나간다. 타인에 의해서 정체성이 소거된 ‘지금’ 여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이 담고 있는 8편의 단편들에는 표지처럼 결핍, 상실, 상처, 억압 그리고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신경증처럼 환상을 보거나 강박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또 다른 자아와 대면하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등 현실과 환상 그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길을 벗어난 존재들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미스테리 같은 상황에 처해져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겪는 비현실, 초현실적인 상황은 역설적으로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쟁, 고아, 살인, 납치, 반복되는 실수 등 앞뒤가 모두 막힌 상황에..
앤서니 엘리엇, 브라이언 터너 《사회론: 구조, 연대, 창조》, 2015년, (주)이학사 산지 벌써 3년은 된 책이다. 조금씩 읽고 읽어서 최근에야 완독했다. 토막 내서 읽는 바람에 흐름을 놓치기도 했고, 내용이 좀 복잡하다 보니 전체적인 희미한 윤곽만 기억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게 어디인지. 연대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까? 젠더, 인종, 정치, 사회경제적 위치 등으로 인한 첨예한 대립이 끊이지 않고, 해결의 기미는 커녕 갈수록 심화되는 마당에 말이다.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연대는 돌봄, 관심, 정서, 애정, 부드러움, 동정, 사랑을 중심 주제로 하는 사회적 담론이다." p.117 "이 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 우리의 초점은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부터 니체와 그 너머에까지 이른다. 이 장의 세 번째 부분에서는 신학적인 것으로부터 대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