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권하원, 배예람, 경민선, 이로아, 《호러》, 안전가옥, 2021년
전공서적을 빌리러 천년 만에 개포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이다. 신간 코너에 ‘호러’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자마자 집어 들었다. 시험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두 호흡에 완독했다. 사실, 공포라는 게 꼭 자르고, 썰고, 찔러야 생기는 감각은 아니다. 의붓자식을 살해하는 비정한 부모의 뉴스뿐만 아니라 내 통장에 마이너스가 불어나고, 회사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는 등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마주하는 것 또한 큰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굳이 공포 영화/소설을 보는 건 현실의 공포에 좀 더 단련이 되게 하는 뭐,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젊은 작가들이 쓴 단편 모음이다. 이들이 느끼는 공포의 양상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과 사적 복수가 고전적..
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 2012년, 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표지 이미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성의 얼굴 위로 붓 자국으로 지나간다. 타인에 의해서 정체성이 소거된 ‘지금’ 여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이 담고 있는 8편의 단편들에는 표지처럼 결핍, 상실, 상처, 억압 그리고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신경증처럼 환상을 보거나 강박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또 다른 자아와 대면하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등 현실과 환상 그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길을 벗어난 존재들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미스테리 같은 상황에 처해져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겪는 비현실, 초현실적인 상황은 역설적으로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쟁, 고아, 살인, 납치, 반복되는 실수 등 앞뒤가 모두 막힌 상황에..
앤서니 엘리엇, 브라이언 터너 《사회론: 구조, 연대, 창조》, 2015년, (주)이학사
산지 벌써 3년은 된 책이다. 조금씩 읽고 읽어서 최근에야 완독했다. 토막 내서 읽는 바람에 흐름을 놓치기도 했고, 내용이 좀 복잡하다 보니 전체적인 희미한 윤곽만 기억에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게 어디인지. 연대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까? 젠더, 인종, 정치, 사회경제적 위치 등으로 인한 첨예한 대립이 끊이지 않고, 해결의 기미는 커녕 갈수록 심화되는 마당에 말이다.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연대는 돌봄, 관심, 정서, 애정, 부드러움, 동정, 사랑을 중심 주제로 하는 사회적 담론이다." p.117 "이 장의 두 번째 부분에서 우리의 초점은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부터 니체와 그 너머에까지 이른다. 이 장의 세 번째 부분에서는 신학적인 것으로부터 대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