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서적을 빌리러 천년 만에 개포도서관에 가서 빌린 책이다. 신간 코너에 ‘호러’라는 책 제목이 눈에 띄자마자 집어 들었다. 시험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두 호흡에 완독했다.
사실, 공포라는 게 꼭 자르고, 썰고, 찔러야 생기는 감각은 아니다. 의붓자식을 살해하는 비정한 부모의 뉴스뿐만 아니라 내 통장에 마이너스가 불어나고, 회사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는 등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마주하는 것 또한 큰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굳이 공포 영화/소설을 보는 건 현실의 공포에 좀 더 단련이 되게 하는 뭐,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젊은 작가들이 쓴 단편 모음이다. 이들이 느끼는 공포의 양상도 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과 사적 복수가 고전적인 공포물의 큰 축이었다면, 5개의 단편은 부조리한 사회구조, 실업과 불황, 팬데믹 등에서 오는 심리적, 물리적 공포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 몰입감이 높았고, 읽는 속도감도 더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안정과 행복이라는 아늑한 공간도 공포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건 아닐까? 어떤 공포가 어떻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게 삶이긴 하지만, 단 한 순간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살아내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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