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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 2012년, 문학과지성사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다. 

 

표지 이미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여성의 얼굴 위로 붓 자국으로 지나간다. 타인에 의해서 정체성이 소거된 ‘지금’ 여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이 담고 있는 8편의 단편들에는 표지처럼 결핍, 상실, 상처, 억압 그리고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신경증처럼 환상을 보거나 강박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또 다른 자아와 대면하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등 현실과 환상 그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길을 벗어난 존재들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 미스테리 같은 상황에 처해져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이 겪는 비현실, 초현실적인 상황은 역설적으로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전쟁, 고아, 살인, 납치, 반복되는 실수 등 앞뒤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느끼는 압박과 소외 그로 인한 증폭하는 트라우마로 인해 마치 환각과도 같은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점이 이 책을 미스테리 소설처럼 읽다가도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그 순간 모든 사건들 위에 우리가 사는 지금을 포개게 된다. 특히, 몇몇 단편은 순환구조를 보여주는데 마치 운명 혹은 우리들 모두가 소설 속 주인공일 수 있음을 넌지시 얘기해 주는 듯하다.

인상깊은 구절을 남겨본다. 오랜만에 소설을 보니 갈증이 풀리는 듯하다.

 

"떠난 사람들은 언제고 돌아올 것이다. 나는 집을 지키며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들을 기다릴 것이다." p.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