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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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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과거는 어째서 자꾸 돌아오는가》, 2021년, 문학과지성사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가 지역에 기초한 지역 갈등에서 계속 혹은 신분에 기초한 갈등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p.30 한국 사회는 새로운 타자, 새로운 타자의 문제를 위한 사회의 빈 장소를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 p.35 사회적 공기라는 언어의 특성이 소설적 재현이 가지는 윤리의 기본, 디폴트 값이라는 의미다. p.69
신해욱, 《창밖을 본다》, 2021년, 문학과지성사 요즘 문지 에크리 시리즈를 애정하고 있다. 회사 일이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아 긴 호흡의 글을 소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량이 짧아 한 번에 읽을 수 있었다. 신해욱의 이 책은 산문이라기 보다 단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흐릿해 마치 비가 내린 뒤의 인왕산처럼 어떤 신비로운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 그녀의 다른 책들을 찾아 봐야겠다. 기다려진다.
윤광준, 《윤광준의 생활명품》, 2023년, (주)을유문화사 대상의 껍데기만 보는 사람을 관찰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놓인 위치, 다른 대상과의 관계 그리고 시간/사회 안에서의 가치를 통찰할 수 있어야 진짜 관찰자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윤광준이 바로 “진짜 관찰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관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물건에서 디자인과 효용은 물론 그것의 내력, 사회적 맥락을 조목조목 재미지게 설명하기까지 한다. 그가 설명하는 101가지의 물건들은 작게는 메모지에서 조명기구까지 다양하고 가격대 또한 넓게 분포한다. 작가 개인의 사용기에서 출발하나 싶었던 이야기가 그 물건으로 표상되는 사물과 사물 혹은 사물과 인간 간의 관계, 그런 사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로 번져간다. 이 책은 회사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생활과 명품이라는 조합이 내..
3월 3일(일)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구본창의 항해》
2024년 2월 24일(토) : 송은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정서희, 박형진, 신미정, 박웅규 작가 그리고 물론 유화수 작가의 작품이 즐거움을 줬다.
2024년 2월 17일(토)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신자, 실로 그리다》 항상 그렇다. 전시 초반엔 그렇게 바쁜 일이 있고, 귀찮거나, 급작스러운 일이 생긴다. 솔직히 다 핑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폐막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왔다. 이신자 전시를 보러. 혹시 몰라 집에서 9시 45분쯤 차를 끌고 나왔다. 아무래도 요즘 날씨가 따뜻하다 보니 서울랜드를 찾는 어린이들과 가족 그리고 캠핑장을 찾는 캠핑족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외길인 과천관 길이 막히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리니까. 다행히 10시 10분에 전시장에 입성했다. 사실, 이신자 작가에 대해 몰랐었다. 변명을 대자면 한국 미술사에서 공예는 여성작가, 주류 매체가 아닌 이유로 이중 소외를 겪고 있고, 서울공예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매우 정적이며 수줍은 작품으로만 인식되었기 때..
2024년 2월 12일(월) :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전시는 두 가지로 나뉜다. 보고 싶은 전시와 봐야 하는 전시로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많은 젊은이들 혹은 미술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 대부분이 동시대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채우고 있는 동시대 미술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이 있게 한 배경과 조건이 바로 모더니즘 미술이 아닌가. 장욱진 전시 마지막 날 급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한 삼 십 미터쯤 줄이 이어진 모습을 보고 역시나 전시를 하는 공간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덕수궁엔 외국인과 중장년층이 많아 모더니즘 회화를 전시하기 딱 좋은 공간이니까. 전시장에 들어서니 관람객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
2024년 2월 11일(일) :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정현 개인전《덩어리》 간만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을 찾았다. 권진규 작품이 상설 전시가 되면서 남서울의 정체성이 잘 잡혀간 것 같다. 벨기에 영사관, 이축이라는 ‘역사성’, ‘시간’을 담은 건축물이기 때문에 한국 모더니즘 조각 역사를 대표하는 권진규 상설전은 안성맞춤이 아닐까. 시간상 권진규 상설전은 지나치고, 정현의 작품과 마주했다. 그가 “물성”을 대하는 자세는 진지함을 넘어서 마치 면벽수행을 하는 승려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철, 침목, 콜타르, 아스콘 등 우리의 시선을 받지 못한 버려지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것들이 이겨낸 ‘시간’을 관람객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표현이 아닌 존재로 말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마치 비존재를 존재로 만드는 과정, 그 형상에서 어떤 실존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얼룩덜룩 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