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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2일(월) : 《가장 진지한 고백 : 장욱진 회고전》 전시는 두 가지로 나뉜다. 보고 싶은 전시와 봐야 하는 전시로 말이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많은 젊은이들 혹은 미술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 대부분이 동시대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채우고 있는 동시대 미술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이 있게 한 배경과 조건이 바로 모더니즘 미술이 아닌가. 장욱진 전시 마지막 날 급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한 삼 십 미터쯤 줄이 이어진 모습을 보고 역시나 전시를 하는 공간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덕수궁엔 외국인과 중장년층이 많아 모더니즘 회화를 전시하기 딱 좋은 공간이니까. 전시장에 들어서니 관람객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
2024년 2월 11일(일) :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정현 개인전《덩어리》 간만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을 찾았다. 권진규 작품이 상설 전시가 되면서 남서울의 정체성이 잘 잡혀간 것 같다. 벨기에 영사관, 이축이라는 ‘역사성’, ‘시간’을 담은 건축물이기 때문에 한국 모더니즘 조각 역사를 대표하는 권진규 상설전은 안성맞춤이 아닐까. 시간상 권진규 상설전은 지나치고, 정현의 작품과 마주했다. 그가 “물성”을 대하는 자세는 진지함을 넘어서 마치 면벽수행을 하는 승려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철, 침목, 콜타르, 아스콘 등 우리의 시선을 받지 못한 버려지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것들이 이겨낸 ‘시간’을 관람객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표현이 아닌 존재로 말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마치 비존재를 존재로 만드는 과정, 그 형상에서 어떤 실존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얼룩덜룩 때가 ..
2024년 1월 29일(월) : 국립어린이박물관 국립어린이박물관 오프닝 행사가 있어 차를 끌고 세종까지 달려갔다. 회사에서 대략 2시간 가량 걸렸고, 그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맛없는 음식과 캔커피로 배를 채웠다. 세종시에는 정부기관의 본부가 몰려있다. 계획 도시에 조성되었기 때문에 인프라가 뒤늦게 따라왔는데, 미술관, 박물관이 그 중 나중에 조성된 거라고 보면 될 거다. 주변에 아직도 지어질 건물을 기다리는 텅 빈 땅들이 많기 때문에 이 국립어린이박물관은 지난 연말에 정식 개장을 했다고 한다. 역시 국립답게 규모는 컸고, 그 안을 꾸미고 있는 아름다운 기본 기자재와 인테리어에서 중앙 부처의 파워가 느껴졌다. (당연한 거지만) 공간별로 여러가지 테마를 부여했는데, 아직까지 이곳이 박물관인지 과학관인지 미술관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2024년 1월 13일(토) : 서울시립아카이브 《이력서: 박미나와 Sasa[44]》 서울시립아카이브에 가야지 매번 생각만 하다 이제서야 가보게 됐다. 집에서 운전하고 1시간을 달려서 도착. 외관은 역시나 새 건물이라 깔끔했고, 규모도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커서 놀랄 정도였다. 전시는 박미나, 사사 작가가 참여하는 “이력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전시 공간을 잘 구획해서 동선이 매우 역동적이었고, 작품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이 일본 제품 카피라니..좀 서운했지만, 반가웠다. 거의 35년만인가? ㅠㅠ 각종 자료가 잘 집적 되어있어 이 근방 국민대, 상명대 친구들한테는 정말 좋은 배움터가 될 것 같다.
조지 우드코크, 《프루동 평전》, 2021년, 한티재 즉 사회를 개인들이 서로를 보증하는 네트워크로 바꾸면서 프루동은 정치조직과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분했다. 이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면 더 이상 정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의 계열 이론으로 돌아가서, 프루동은 권위로 시작된 이 계열의 끝이 아나키라고 결론을 내렸다. p.333 프루동 평전을 끝냈다. 일전에 300페이지쯤 보고 반납했는데, 한 번 더 빌려서 완독했다. 평전을 통해 그의 사람을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가난에서 시작해 가난으로 끝나는 드라마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아나키스트 프루동의 삶은 치열하게 이상과 현실 사이를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하며 때론 격정적이고 때론 자조적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진정한 사회변혁을 향한 꿈만큼은 진실했다. 천천히 그가 남긴 책들을 통해 다시 그에게 다가..
2023년 12월 15일(금) : 아모레퍼시픽 [LAWRENCE WEINER: UNDER THE SUN] 싫어하는 사람과 전시를 봤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싫다는 느낌으로 가득찬 관람. 끝.
어떤 죽음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상실을 통해서만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게 된다. “인생이 덧없다”, “인생은 찰나다”처럼 말이다. '덧'의 뜻은 ‘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이고 ‘찰나’는 75분의 1초다. 아직 나에게 운이 좋다면 앞으로 30년 정도의 세월이 주어지겠지만, 뉴스를 접하자마자 30년이라는 시간이 축소되어 마치 작은 점, 순간과도 느껴진다. [시간] : 주관적 시간, 객관적 시간은 사실 동일한 본질에 대한 감각의 차이일 뿐. 하지만, 그 사이에는 매우 차디찬 관조의 강이 흐르고 있다. 둘을 잇는 건 원형 교차로처럼 회귀할 수도, 혹은 멀어질 수도 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길일 것이다. 상상을 해본다. 선착장에 서서 천천히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에 탄 누군가를 지켜보는 사람있다. 거꾸로 유유히 흐르는..
이장욱, 《영혼의 물질적인 밤》, 2023년, 문학과 지성사 신성은 인간의 영혼이 궁극에 이르러 대면해야 할 무엇이지만, 현실 정치 안에서 그것은 반드시 오염된 ‘인간적’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 현실 정치란 ‘경쟁’과 ‘적대성’을 통해서만 그 건전함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p.12 쓰지 않는 시간이 쌓이지 않으면 쓰는 시간이 오지 않는다. p.19 소설의 몸, 소설의 육체란 그런 것이라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있는 것. p.35 오늘날 전지적 작가 시점이 가능한 것은 세계가 작가에게 스스로를 누설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세계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작가에게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p.43 나에게 이장욱 작가는 시인보다 소설가로 더 친숙하다. 그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