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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이장욱, 《영혼의 물질적인 밤》, 2023년, 문학과 지성사

 

신성은 인간의 영혼이 궁극에 이르러 대면해야 할 무엇이지만, 현실 정치 안에서 그것은 반드시 오염된 ‘인간적’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 현실 정치란 ‘경쟁’과 ‘적대성’을 통해서만 그 건전함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나약한 인간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p.12

 

쓰지 않는 시간이 쌓이지 않으면 쓰는 시간이 오지 않는다. p.19

 

소설의 몸, 소설의 육체란 그런 것이라고,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있는 것. p.35

 

오늘날 전지적 작가 시점이 가능한 것은 세계가 작가에게 스스로를 누설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세계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작가에게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p.43

 
 
 

 

나에게 이장욱 작가는 시인보다 소설가로 더 친숙하다. 그 이름을 알게 된 건 순전히 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수년 전 알라딘이었나 예스24에서 민음사 책들을 훑어보다 우연히 발견한 제목 ‘천국보다 낯선’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결제 버튼을 눌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모든 아이디가 짐 자무쉬일 정도로 자무쉬의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다만 아쉬운 건 그가 남자라는 것뿐. 
 
‘천국보다 낯선’이 출간된 2017년부터 2023년 12월까지 나는 이장욱이라는 작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늘 그렇듯 독자가 작가를 기억해야 할 의무나 부채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얼마 전 문학과 지성사의 ‘에크리’라는 시리즈에 이장욱 작가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에크리라..예전 대학원 다닐 때 라캉의 에크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했던 건 잊고 있었던 이장욱이었다. 
 
좋은 글은 마침표에서 멈추지 않는다. 생각을 일깨우고, 묶여있던 생각의 구슬들의 매듭을 펜으로 끊을 수 있게 한다. 평론가이자 시인 그리고 소설가인 이장욱이 바라보는 사적인 세계는 냉정하고, 담담했다. 어쩌면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도 같이. 
 
글뿐만 아니라 그가 좋아한 미국 인디 밴드 ‘Sparklehorse’도 알게 됐다. 빨래방에서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빠르게 이장욱의 책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 이장욱은 분명 포크를 좋아하겠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