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영 교수님이 수업 마지막 시간에 한 말이다. “하버드 MBA 수업의 마지막 날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좋은 말만 하고 끝낸다”라면서 여러 좋은 말들과 함께 장자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읽어도 알듯 말듯하지만 읽어볼 만하다는 게 그분의 말씀이었다.
도서관에서 장자를 빌려보려는데 책들이 모두 두꺼웠다. 그래서 공자의 논어를 검색해 봤다.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위험한 논어”를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논어가 왜 위험하다는 건가? 동양고전 중 고전으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정전인데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26일 일요일 한 숨에 다 읽어버렸다. 여기서 위험하다는 것은 배움이 내포하고 있는 치명적인 위험을 뜻하는 거였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의 책에 감동을 받거나 어떤 사람의 말에 감화가 될 때 우리는 자신의 감각을 잃고 그 지식을 모두 흡수해 버리지 않나. 책의 도발적인 제목은 바로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는 경구가 담고 있는 배움의 본질을 뜻한다.
논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논어의 현재성 그리고 왜 논어가 아직까지 읽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은 하는 책이다.
가뜩이나 마음이 혼란한 요즘, 어떤 방향이 되어줄 나침반이 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흔들릴 때 일수록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놓치기 마련이니 좋은 말들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것같다.
"객관적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의미를 파악하려면 주관적 방법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진실이 들어 있는 말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완전히 납득할 수 있기까지 단단히 껴안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그 말이 자기 몸 안에 울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p.8
"배우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쓸모없는 녀석이군" 이러고 생각하고 말 일이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군자'이다." p.26
유자가 말했다. "예는 형식이 아니다. 쌍방이 서로 마음을 열고 조화로운 관계가 세워진것을 '화(和)'라 한다. 이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야말로 필연적으로 '예'에 들어맞는다." p.35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봐야 아무래도 괜찮다. 자기 자신을 알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p.41
"40세가 되어 그때까지 내가 나아가야만 하는 '도'가 나도 모르게 헤맨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p.50
"일찍이 일어난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늘 자신의 굳은 믿음을 타파해 새로운 사태를 그대로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다면, 대군단을 이끄는 사령관이 되기에 걸맞다." p.55
"군자는 스스로 자기 상태를 보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소인은 남과 비교하기만 할 뿐 스스로 자기 상태는 보지 않는다." p.57
벌어진 일을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는다. 해버린 일을 뒤에서 비판하지 않는다. 지나가버린 일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모두 헛일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고치는 일이다. p.72
옛 사람은 생각한 것을 가볍게 말하지 않았다. 몸 상태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p.89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는 그대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것을 느끼겠다고 하면 그대 감각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이 되고 만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p.98
공자는 의(意), 필(必), 고(固), 아(我) 네 가지 일을 거절하였다. 의는 사전에 이러쿵저러쿵하자는 의도. 필은 반드시 이렇게 하고 싶다는 고집. 고는 생각에 빠져버린 일을 바꾸지 않는 완고함. 아는 '내가 내가'라는 자기중심주의. p. 153
날이 차가워지기 시작해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상록수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위기가 시작되어야 누가 정말로 힘이 있는지 드러난다. p. 162
속을까 봐 걱정되어 이리저리 손을 쓴다든지, 신용을 잃을까 봐 여기저기 두루 신경 쓴다. 이와 같이 마음 쓰는 일은 현인이 할 짓은 아니다. 그러지 않고 느긋하게 있으면서 뭔가 있을 때 맨 먼저 생각이 미치는 것이 슬기로움이다. p.225
분노를 터뜨릴 때는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생길 해악을 생각한다. 이익을 얻을 기회가 있으면 그것의 의의를 생각한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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