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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조성기, 《사도의 8일》, 한길사, 2020년

#슬프다. 슬퍼 

 

생각할수록 애련한. 부제가 좀 고전적이지 않나?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 같다. 독서 노트를 밀리지 않고 꾸준히 써야겠다고 다짐했건만, 게으름이 순식간에 나를 추월해 앞을 콱! 가로막았다. 그래도 “직장인이잖아. 우린 바쁘잖아”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고 다시 시작해보자~ 

 

사실 역사 혹은 역사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간 ‘지금’에 몰두하는 바람에 현대소설이나 현대시를 중심으로 독서를 해온 게 사실이다. 뭐랄까.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작가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그러다 직장이 있는 곳이 구도심이고 역사 유적지라 자연스럽게 역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회사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의 중심에는 항상 정조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가 있기에 그 분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내 일을 제대로 소화할 수가 없기도 하다. 중앙에 있다 지역으로 와서 많은 부분들을 억지로 이해해야 했는데, 도시를 설명하거나 홍보할 때 이런 역사의 주인공들을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암튼 이번 하반기 콘텐츠도 역사적인 인물이 주제인지라 <사도의 8일>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사도가 뒤주에서 죽어간 8일을 그린 소설이다. 책의 구성은 1일부터 시작해 8일을 각 챕터로 하여 죽음으로 향하는 사도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혜경궁 홍씨의 관점이 서로 교차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모두 알기 때문에 사도의 8일이 자칫 지루할 수 있었지만, 작가는 혜경궁 홍씨의 시점을 집어넣어 독자가 사도의 죽음과 둘러싼 원인, 배경 그리고 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은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이 모든 것은 정확한 역사적 사실 이라기보다는 극화된 역사소설 정도로만 보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사도세자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되는 부분 아니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화완옹주와의 관계가 쓰여 있다는 건 이 책이 소설임을 다시 일깨워준다.(소설로는 정말 흥미로운 소재 아닌가) 더군다나 혜경궁 홍씨의 목소리는 그가 쓴 한중록에서 가져왔을 테니 말이다. 

 

사실 결말과 원인을 다 알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신선한 느낌을 받지 못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도 가장 고통스러웠을 사도 자신과 그 사건을 직접 지켜봐야 했던 혜경궁 홍씨의 목소리가 병렬되는 형식은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드는 장치다. 팽팽한 감정의 시위를 적절히 조절하기도 하고. 

 

역사 소설을 통해 한 시대를 배울 수 있는 건 이 책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혜경궁 홍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편의 뒤주형은 소론 노론의 갈등에서 연유된 면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편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 면이 많았다.” p.84 

 

정조의 탕평책에 대해 사도세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탕평책으로 소론과 노론의 공생을 도모한다고 했지만 일찍이 유배된 소론의 자손들은 도외시하고 있었다.” p.119

 

“대게 탕평책에 반대했던 강경파 소론 준로파들이 줄줄이 엮여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소론 준론파들은 소론 완론파로 전향하여 탕평책을 지지하는 척했고 노론은 더욱 득세하기에 이르렀다.” p.125

 

맞다. 부제가 ‘생각할수록 애련한’인데 좀 촌스럽다. 아는 인물에 아는 이야기를 더욱 흔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