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을 찾았다. 권진규 작품이 상설 전시가 되면서 남서울의 정체성이 잘 잡혀간 것 같다. 벨기에 영사관, 이축이라는 ‘역사성’, ‘시간’을 담은 건축물이기 때문에 한국 모더니즘 조각 역사를 대표하는 권진규 상설전은 안성맞춤이 아닐까.
시간상 권진규 상설전은 지나치고, 정현의 작품과 마주했다. 그가 “물성”을 대하는 자세는 진지함을 넘어서 마치 면벽수행을 하는 승려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철, 침목, 콜타르, 아스콘 등 우리의 시선을 받지 못한 버려지는 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것들이 이겨낸 ‘시간’을 관람객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표현이 아닌 존재로 말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마치 비존재를 존재로 만드는 과정, 그 형상에서 어떤 실존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얼룩덜룩 때가 낀 거울을 본 존재가 어렴풋한 윤곽만 훑다가 그 때와 때 사이에 매우 작지만 뚜렷한 자신의 형체를 본 순간, 빨려 들어가는 듯한 자신의 존재감 같이! 정현의 조각이 큰 힘을 주는 건 구상, 비구상의 영역을 떠나 시간을 흡수한 비존재들이 존재가 되어 우리에게 예리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속삭이는 바로 그 찰나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단단하고,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작가를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아마 올해 어떤 전시를 더 보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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