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상실을 통해서만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게 된다.
“인생이 덧없다”, “인생은 찰나다”처럼 말이다. '덧'의 뜻은 ‘얼마 안 되는 퍽 짧은 시간’이고 ‘찰나’는 75분의 1초다.
아직 나에게 운이 좋다면 앞으로 30년 정도의 세월이 주어지겠지만, 뉴스를 접하자마자 30년이라는 시간이 축소되어 마치 작은 점, 순간과도 느껴진다.
[시간] : 주관적 시간, 객관적 시간은 사실 동일한 본질에 대한 감각의 차이일 뿐. 하지만, 그 사이에는 매우 차디찬 관조의 강이 흐르고 있다. 둘을 잇는 건 원형 교차로처럼 회귀할 수도, 혹은 멀어질 수도 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길일 것이다.
상상을 해본다. 선착장에 서서 천천히 물살을 가르는 유람선에 탄 누군가를 지켜보는 사람있다. 거꾸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함께 노을 그리고 반대편 아파트들의 아름다운 곡선이 자아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교차하는 서로의 시선에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곳,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안도감과 무관심이 스쳐갈 뿐이다.
그런데 일순간 배가 무너졌다. 배에 탄 사람들의 표정은 이내 절망과 간절함으로 바뀌고, 강변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 또한 무력감을 넘어 절망의 감정으로 수렴한다. 주관적 시간이 엄격하게 객관적 시간이라는 공통감각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시간이라는 건 이렇듯 충격과 사건이 없이는 사람의 숫자대로 제멋대로 그리고 제 나름대로 무감각하게 흘러간다.
오늘 세상을 등진 이는 무명으로 이십대를, 유명으로 삼십대를,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사십대를 보냈다. 나는 그와 세 살 차이난다. 이십대에는 무기력하게, 삼십대에는 신경질적으로 그리고 사십대에는 무기력해진 나.
12월 27일, 그 배우가 죽음으로써 나는 나와 멀고도 먼 존재였던 그를 27일 단 한 순간 혹은 덧 혹은 찰나에 마주하고 감각할 수 있었다. 응당 존재로 소멸해야 했지만, 이미지로만 남게 된 배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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