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사랑이 들린다. “지난 한 해 저희를 사랑해 주셔서” 혹은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한 해” 등등.
만약 사랑을 크기와 무게로 가늠할 수 있다면, 한 해 사랑의 전체 90퍼센트가 펼쳐지는 때가 바로 12월 25일 즈음이다. 거꾸로 말하면 1월부터 11월까지 우린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전달하지도 못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유튜브에서 어떤 남자 연예인이 강박적으로 본인의 집을 과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미는 것을 봤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졸랐지만, 돈이 없어 크리스마스 장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유튜브 속 이 주인공은 항상 과장된 표정과 몸짓 그리고 PPL을 위해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할 뿐이고, 자신의 과거에 조미료를 뿌렸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몰입이 되었던 것은 나조차도 연말의 공허함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하니까. 물건이든 강박적 사랑이든.
그렇게 연말에 펼쳐지는 압축적이고, 강렬한 사랑에 대한 의무감은 역설적으로 어떤 의무와 미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충만하기 위해서는 1월부터 11월까지 부족했던 사랑이 12월에 가서야 완전한 것이 되고, 아름다운 것이 된다. 늘 그렇듯 구세군이 등장해야 우리의 이타심이 발휘되는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린 오너먼트는 깜빡이는 전구 빛을 가볍게 튕겨낸다. 12월 달력 한 장에 1년이 다 담긴 듯하다. 이렇게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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