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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김성현, 《오늘의 클래식》, 아트북스, 2020년

#한 권으로는 넘치는 내용

 

 

2010년판은 하드커버다. 이 2020년 버전은 소프트커버. 

 

책이 주는 즐거움을 표현한다는 건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말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될 거다. 시, 소설, 희곡 등의 '문학'은 문체라는 글쓴이의 개성이 쉽게 드러나지만, 정보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는 글(비문학)의 경우엔 정확한 논리와 연결구조를 지녀야 하기 때문에 문학 보다는 그것이 덜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 현대음악을 다룬 이 책이 바로 그랬다. 수능으로 따지면 비문학에 속해야 하지만 문장은 문학만큼이나 윤기가 흐르고, 때론 화려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 책의 정확한 이름은 “오늘의 클래식(스트라빈스키부터 진은숙까지 현대 작곡가 40인 열전)”이다. 음. 나는 항상 클래식이라는 음악 범주를 얘기할 때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다. 클래식은 단어 뜻으로만 따지면 ‘고전음악’이라는 뜻인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클래식은 소위 말하는 ‘현대음악’이다. 그렇다면 앞뒤가 잘 맞아 보이지 않는다. 클래식=고전음악+현대음악이라는 건데, 알쏭달쏭할 뿐이다. 그렇담 이렇게 해석하는 게 나아 보인다. 클래식 음악은 고전 형식을 기초로 한 음악이라고.

 

이 책을 잡게 된 건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어떤 결벽증이 있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탐닉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먼지 같은 크기로 해부하고, 다시 재조립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보고 이해해야 한다. 달리기에 빠져 풀코스까지 달린 것이나, 수영을 시작해서 대회까지 나간 것이나 다 그런 맥락이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여서 중학교 때 팝을 처음 접한 후로 락에서 출발한 음악 여행은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앰비언트를 지나 클래식까지 와버렸다.

 

이 음악 여정에서 특히 내가 신경 쓰는 부분이 ‘족보’다. 내 뿌리에는 먼지만큼도 관심 없지만, 희한하게 음악 세계에서 만큼은 한 뮤지션을 낳게 한 조상은 누구인지, 친척은 있는지 그리고 낳은 자식은 부모 중 누구를 닮았는지항상 궁금해 미친다. 음, 돌이켜 보면 이건 하나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자/학자는 갖춰야 할 덕목이겠지만, 일반인이라면 그저 덕후로 가는 지옥행 급행열차 티켓일 뿐이다. 운명이 그러하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지은이 김성현은 조선일보 기자인데, 40개월 동안 예술의 전당 월간지에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부제처럼 현대음악을 스트라빈스키에서 시작해 진은숙까지 총 40명의 작곡가를 통해 둘러본다. 현대음악의 문이 열린 20세기 초부터 시작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주요 현대 음악가들의 일생과 대표 디스코그래피를 담고 있어 그야말로 현대음악의 동아전과라고니 할까. (연령이 드러나는군)

사실 이런 책들은 흔하다. 소위 '입문서'라고 분류될 수 있는 이런 책들은 클래식뿐 아니라 락 블루스 재즈까지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는 놀랄만한 즐거움은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비문학이 마치 문학처럼 읽힌다. 물론 소설처럼 오르락 내리락 서사가 있거나 시처럼 짧고 강렬한 뒷맛이 있는 건 아니다. 기사같이 딱딱하지 않으면서 마치 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하는 맛이 있다. 

 

이를테면 러시아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비스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그리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설명하는 챕터 제목이 <떠난 자, 돌아온 자, 그리고 남은 자>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위 세 명의 작곡가 들은 러시아 혁명 전후에 떠나거나 남거나 돌아왔다. 역시나 세 명의 음악은 음악적으로도 다른 모습을 남겼고 서로 다른 말년을 보냈다. 이처럼 저자는 소제목들을 눈에 확 띄는 광고 카피처럼 써서 책을 덮은 후에도 내용이 오래 기억에 남게 했다. 더불어 툭툭 튀어나오는 쉽고도 적절한 비유는 저자가 뛰어난 기자를 넘어 재미난 이야기꾼임을 보여준다. 

 

“쇼스타코비치는 말러와 차이콥스키를 거쳐서 나온 베토벤의 후예라는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말처럼, 작곡가의 진정한 ‘음악적 얼굴’은 고전 양식의 근간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극한까지 확장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 있다. 만약 그가 소방수였다면, 쇼스타코비치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체제와 이념이 아니라 아마도 음악이었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각 작곡가들의 소개가 끝나면 그 또는 그녀의 대표 음반을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어서 정말로 “작곡가에게 가는 길”이 열려있다. 책을 읽는 내내 애플뮤직으로 작곡가들이 남겨놓은 음악을 들으며 눈과 귀로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읽은 지 꽤 된 책인데 이제야 글로 남기게 됐다. 중간에 글을 날려먹기도 해서 내용이 엉망진창이지만 연말에 올해의 책으로 주저없이 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