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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보고

이강룡,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도서출판 유유, 2014년

# 2020년 두 번째 책 

 

회사 뒤편에 있는 도서관에서 대출한 네 권의 책 중 하나다. 내가 번역자는 아니지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글을 쓸 때 신중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쓰고 싶어서'였다. 물론 책 한 권을 본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읽는 동안 그리고 읽은 후 한동안 굳은 다짐을 이어간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었다. 앞으로 내가 회사나 혹은 이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매번 떠올릴 것 같다. 

 

 

책표지다. 원고지 느낌이네. 

이 책의 부제는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이다. 제목만 보면 영어 원서를 우리나라 말로 바꾸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책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번역자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창작자) 혹은 나처럼 회사에서 딱딱한 공문을 찍어내야 하는 일반인에게도 유용하다. 바로 이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가 말해주는 것은 글을 쓸 때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태도’라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건 책상 속 비밀일기가 아닌 이상 글쓴이와 읽는 사람과의 대화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대한 철저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 배려란 무엇이겠는가. 바로 글 쓰는 이의 노력, 제목에 있는 단어로 바꾸면 ‘우리말 공부’가 아니겠나. 

 

이 책은 다른 국어 문법책처럼 보조용언, 조사, 부사 등의 쓰임, 용례를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풍부한 예시와 본인의 경험을 제시해 자연스럽게 그 활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우리도 어릴 때 국어/영어문법 배울 때 법칙 그 자체를 외울 때 보다 다양한 문장을 접했을 때 기억에 더 남지 않았는가. 또 다른 특징은 ‘차례’에 나와 있는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책은 1장 좋은 글 고르기에서부터 2장 용어 다루기, 3장 맥락 살피기, 4장 문장 다듬기, 5장 문법 지식 갖추기 그리고 6장 배경 지식 활용하기로 끝맺음한다. 마치 ‘나무로 나만의 의자 만들기’ 같은 설명서처럼 필요한 도구, 재료 다듬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도료로 마감하기 등 글을 서서히 쌓아올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덕분에 책을 잡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다 읽어버렸다. 

 

결국 글쓴이가 강조하는 것은 정확한 문법 사용, 문장부호뿐만 아니라 번역자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더불어 ‘더 나은 표현을 찾고자 하는 노력’인 것 같다. 오역에서 비롯되는 오해들, 우리말을 해치는 엇나간 표현들 이 모두는 우리말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기껏해야 회사에서 공문, 블로그 일기 정도를 쓰는 나이지만,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지을 때 치열함은 항상 지니고 싶다. 보는 이가 “이 사람이 길지 않은 글을 썼지만, 많은 고민을 했구나”라고 느끼게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을 몇 개 옮겨본다. 

 

좋은 글은 문제의식에 머물지 않고 주제를 잘 반영한다. p.15
좋은 글에는 판단이나 주장보다 근거가 많다. 다짐과 예측은 적고 경험 사례는 많다. p.37
“귀찮고 번거로우며 들어가기 힘든 그 좁은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노라면, 당신은 어느덧 전혀 만날 수 없을 줄만 알았던 두 맥락을 잘 연결하고 있을 것이다.” p.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