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
이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작년부터였나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현대음악의 넓고 ,깊은 바다를 항해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늘 그렇듯 모르는 것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것의 뿌리, 기원, 혈통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대단하게 들리겠지만 좀 더 가볍게 말하면 메탈리카라는 밴드의 조상은 도대체 누군가?하는 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의문이었는데, 곧 풀렸다. 단지그, 모터헤드라는 사실을)
암튼 나 자신의 족보에도 관심이 없는 내가 혈통이라는 것에 관심을 쏟게 된 건 앞에서 말한 호기심이었다. 그 호기심의 기원을 분석해 본다면 ‘무언가를 알아내는 걸 습관’으로 가지고 있었던 내 외가 쪽 집안 분위기 그리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길러진 ‘지적 허영심’ 일 거다.
신혼집에 내 방에 있었던 오디오를 옮겨오고 주로 플레이한 음악은 클래식이다. 짝꿍이 좋아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를 적당한 농도로 유지하기 딱 좋은 장르가 바로 이 클래식이었던 거다. 이후 무던히도 클래식 CD를 샀다. 그러다 읽은 책이 <오늘의 클래식>이었고, 그 책에서 현대음악이라는 바다의 냄새를 맡았다.
이 책의 한 챕터를 맡고 있는 작고가 필립 글래스는 그 전에 사서 들었던 ‘비킹구르 올라프손’ 앨범을 통해서 이미 접했다. 그 첫 느낌을 말하자면 음악이 그의 이름처럼 유리알처럼 투명하다는 것? (ㅎㅎㅎㅎ) 그래서 또 발동한 호기심에 찾아보니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이 출간되었고, 회사 바로 뒤 도서관 서가에 있음을 알게됐다.
책을 모두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서관에서 대출과 반납을 세 번을 반복해서 568쪽을 해치웠으니 말이다. 그의 삶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현대음악에서 이뤄낸 업적만으로도 대단한데, 거기에 그와 동시대 활동했던 리처드 셰라, 라우셴버그, 앨런 긴즈버그와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책 후반부에서 언급된 두 번째 부인이 등장하면서부터 재미가 반감되었는데 외도에 대한 자기 변명이 지나치게 길고, 영화음악을 만드는 자신만의 기법을 너무 지리하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필립 글래스의 삶과 비트 세대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이 읽을 만하다. 아, 이 책을 보는 동안에는 애플 뮤직으로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들었다. 네 시간의 러닝타임은 역시 지루했다. 하지만 필립 글래스의 위대함은 네 시간 내내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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